메트로이드 40주년: 한 번도 대박 난 적 없이 게임계를 바꾸는 법
데뷔 40년을 맞은 메트로이드, 하나의 장르를 정의하고 게임 디자인을 바꿔놓은 선구자로서의 유산을 돌아본다.
무대는 2차원이다. 내 캐릭터는 광활한 세계 속 작은 존재이고, 뛰어오를 플랫폼과 직접 찾아 나서야 할 적들이 있다. 구역들은 서로 얽혀 있고, 목표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위인지 아래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길을 잃은 기분이다. 지형을 돌아다니다 보면 영영 못 넘을 것 같은 장애물이나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보스와 맞닥뜨린다. 그러다 문득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벽을 쳐 보면, 그 너머에 지도에도 없는 방이 있고 그 보스를 이기게 해 줄 강화 아이템이 놓여 있다. 마침내 보스를 쓰러뜨리면 또 하나의 강화. 이제 그 넘을 수 없던 장애물을 건널 수 있다.
이 설명에 들어맞는 게임은 수백 개나 된다. 2010년대 말 인디 씬에서는 이 장르가 그야말로 대유행이었는데, 그 기원을 두 상징적인 프랜차이즈에서 찾을 수 있다 해서 '메트로배니아'라고 불린다. 캐슬바니아에겐 미안하지만(PlayStation용 '월하의 야상곡'이 결정적이긴 했다), 오늘 이야기할 건 메트로이드 40주년이다.
닌텐도의 이 게임 시리즈는 흥미로운 모순을 안고 있다. 가장 성공한 메트로배니아는 할로우 나이트로, 2025년 기준 1,500만 장 넘게 팔렸다. 이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인 메트로이드 드레드(2021)는 300만 장. 닌텐도 타이틀만 놓고 봐도 판매량 상위 100위(커트라인 579만 장) 안에 메트로이드는 하나도 없다.
단기 흥행만 좇는 업계에서도 메트로이드의 중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단기 흥행만 좇는 업계에서 메트로이드의 중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40년에 걸쳐 사무스 아란의 이야기는 게임 디자인의 탁월함을 보여 주는 본보기였고(몇 번의 실패도 있었지만), 대중의 인정 없이도 하나의 아이콘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증명해 왔다.
흥행 공식의 정반대에 선 게임 개발 철학
메트로이드의 역사는 1980년대 일본 교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닌텐도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미야모토 시게루 이야기는 많이들 하지만, 그의 스승 요코이 군페이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1965년에 입사한 그는 화투 제조사였던 회사가 장난감, 이어서 비디오 게임을 만드는 회사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이 이끈 개발 1부(R&D1)와 함께 휴대용 게임기의 여왕 그 자체인 게임보이를 비롯해, NES 재퍼(“그 시절 패미컴 광선총”) 같은 유명 주변기기 등 굵직한 기기들을 만들어 냈다. 덕 헌트 같은 게임도 개발했지만, 그중 메트로이드보다 중요한 작품은 없었다.
1985년 말, R&D1은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용 게임 하나를 살려 내는 데 석 달을 쏟아야 했다. 앞선 일곱 달 동안 이 작업을 맡았던 디자이너 두 명이 만들어 놓은 거라곤 우주 테마의 스테이지 하나, 그리고 8비트 콘솔의 메모리를 지나치게 잡아먹는 정교한 물리 기반 캐릭터 동작이 전부였다. 감독 사카모토 요시오와 프로듀서 요코이는 이미 있던 것을 시간과 하드웨어의 한계에 맞춰 손봤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닌텐도의 두 히트작을 섞으면서 동시에 그 정반대가 되고자 했다. 마리오 같은 플랫포머지만 적을 기다리는 대신 플레이어가 직접 찾아 나서야 했고, 젤다처럼 비선형 탐험을 하지만 힌트를 줄 사람 하나 없이 고립된 채, 오로지 지도를 헤집고 다니려는 의지에만 기대야 했다.
미로 같은 구조, 비밀 문, 지도의 새 구역을 열어 주는 강화 아이템과 능력. 이것들이 메트로이드를 혁신적인 게임으로 만든 첫 요소들이었다. “메모리를 늘릴 수도 없었고 엔진을 크게 손댈 권한도 없었지만, 구조만큼은 완전히 자유였어요. 어떤 의미에선 높은 벽 사이에 갇혀 출구를 찾아야 하는 처지였죠. 그 느낌을 게임에 담았습니다. 혹시 벽에 총을 쏴서 구멍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다른 방이나 통로가 드러날지도 모르죠.” 사카모토가 IGN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용 1편 메트로이드 게임플레이.
우주라는 테마를 고른 덕분에 긴장감 넘치고 몰입감 있는 분위기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게임이 탄생했다. 메트로이드를 해 본 사람이라면 에일리언의 영향을 모를 수가 없는데, 사카모토 본인도 레트로 게이머에 이렇게 말했다. “팀 전체가 H.R. 기거의 디자인에 영향을 받았고, 그 디자인이 우리가 만들던 메트로이드 세계와 잘 맞아떨어질 거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시리즈의 또 다른 상징인 야마모토 켄지의 음악도 같은 효과를 냈다.
리플리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이 여성이었던 것이다. 개발진은 게임을 빨리 클리어한 사람에게 깜짝 보상을 주려다 나온 아이디어라고 주장했지만, 몇 년 뒤 그 레퍼런스를 인정했다. 이 결정이 게임계에 미친 영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무스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대중문화에 각인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지만, 여성 주인공 게임의 등장을 이끈 그 역할은 90년대부터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가장 황당한 건 이 현상금 사냥꾼의 이름과 다름 아닌 펠레의 연결고리다. '사무스 아란'은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에게서 따온 이름인데, 그의 본명이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가 아니라 '사무스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인 줄 알았던 것이다.
1986년 8월 6일, 메트로이드가 일본에서 패미컴용으로 발매됐다. 설명서에 따르면 배경은 20X5년, 은하 연방이 우주 탐사를 발전시키고 관리하는 세계다. 당신은 현상금 사냥꾼 사무스 아란. 연방은 위험한 실험 생명체 '메트로이드'를 훔쳐 간 우주 해적을 막아 달라며 당신을 고용했다. 메트로이드가 숨겨진 행성 제베스에서, 사무스는 이 임박한 위협을 끝내기 위해 지하 기지 깊숙이 탐색해 들어가야 한다.
애초부터 메트로이드는 마리오나 젤다 같은 판매 히트작이 아니었다. 270만 장으로 패미컴/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 판매 순위 18위에 올라 있다. 그래도 일본보다는 특히 미국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굴릴 만은 하지만 꼭 필요하진 않은 브랜드였던 탓에, 시리즈 다음 작품은 요코이의 게임보이에 강력한 타이틀이 필요해진 1991년에야 나왔다.
메트로이드 II 리턴 오브 사무스는 1991년 8월 26일 미국에서 먼저 나왔고, 일본에는 다섯 달 뒤에 출시됐다. 이번에 사카모토 요시오는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고, 소규모 팀이 그 아이디어를 휴대용 게임기의 한계에 맞춰 옮겨 보려 애쓴 결과물이었다. 이 게임은 훗날 상징이 될 새로운 메커니즘과 디자인을 선보였지만, 게임플레이는 훨씬 전투 위주였다. 지도의 짜임새는 느슨해졌고, 강화 아이템이 다음 구역으로 가는 데 갖는 의미도 줄었다.

시리즈에서 존재감이 가장 약한 작품 중 하나지만, 메트로이드에 미래가 생긴 건 이 게임의 한 서사적 요소 덕분이었다. 메트로이드 II에서 사무스는 이 위험한 외계 생명체의 고향 행성 SR388로 파견되어, 은하 규모의 제노사이드를 수행하고 그들을 영원히 멸종시키는 임무를 받는다. 임무를 완수한 현상금 사냥꾼은 알 하나를 발견하는데, 거기서 마지막 메트로이드가 태어나 그녀를 엄마로 여긴다. 연민에 이끌린 사무스는 그 목숨을 살려 주고 데려간다.
애초부터 메트로이드는 마리오나 젤다 같은 판매 히트작이 아니었다. 270만 장으로 패미컴/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 판매 순위 18위에 올라 있다.
이 서사 장면(참고로 텍스트는 한 줄도 없이, 160x144 픽셀 흑백 화면의 시청각 연출만으로 전달된다)은 사카모토에게 큰 충격을 줬다. 미국 출장 중 한 동료가 메트로이드가 그곳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기어이 보여 주더니, 갓 나온 슈퍼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SNES)용 신작을 만들자고 부추겼다. 그 아이디어에 마음이 열린 데다 메트로이드 II 엔딩의 힘에 영감을 받은 사카모토 요시오는 메트로이드 3, 즉 슈퍼 메트로이드로 더 잘 알려진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 게임은 개발 과정이 엉망진창이었던 걸로 유명하다. 당시 존재하던 그 어떤 게임보다 훨씬 높은 완성도와 규모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 3년이었다. 15명 남짓한 팀은 개발 도중에 16비트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했고, 다들 이것저것 다 했다(그 바람에 각 파트끼리 호환이 안 되는 문제도 생겼다). 낮이고 밤이고 닌텐도에서 살다시피 하며 작은 방에서 쪽잠을 잤는데, 나중에 다른 직원들이 그 방 냄새 때문에 불평했을 정도다. 전작들의 판매가 고만고만했던 탓에 이 프로젝트를 미심쩍어하던 회사는 예산을 몇 번이나 깎았고, 게임은 개발 취소 위기까지 갔다.
1994년에 나온 슈퍼 메트로이드는 사실상 1편의 리메이크이면서, 동시에 원작의 혁신을 다듬고 더 깊게 파고든 한 걸음 진보한 작품이다. 아트와 음악으로 독특한 분위기 속에 플레이어를 데려다 놓는 동시에, 도전적이고 중독적인 게임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전에 없이 거대하고 상징적인 지도, 정교한 탐험과 전투 메커니즘, 점점 더 복잡한 구역을 열어 주는 보상 체계, 그리고 게임플레이 그 자체로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게임계에 영원한 흔적을 남겼다.
1994년 미국에서 나온 SNES용 슈퍼 메트로이드 광고.
한계를 넘어 가능한 최고의 버전을 만들어 내겠다는 팀의 집념이 메트로이드를 하나의 이정표로 만들었다. '역대 최고의 게임' 목록 중에 이 작품을 톱 10에 넣지 않은 걸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개발 내내 속을 끓였던 요코이도 게임이란 이래야 한다며 이 작품을 늘 예로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건 메트로이드 창작의 정점이었을 뿐, 성공 시대의 시작은 아니었다.
메트로이드, 암흑기에 접어들다
슈퍼 메트로이드는 어떤 의미에서 2D 게임 1세대의 마침표였다. 2년 뒤인 1996년, 닌텐도는 닌텐도 64와 슈퍼 마리오 64를 내놓으며 3D 게임의 미래로 가는 길을 그렸다. 이 전환기와 맞물려 요코이는 버추얼 보이의 참패 이후 닌텐도를 떠났고, 1년 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R&D1은 두 팀으로 나뉘었다. 훗날 게임보이 컬러와 게임보이 어드밴스를 개발한 팀, 그리고 그 기기용 게임을 만드는 팀이었다.
사카모토는 후자에 속했는데, 닌텐도 64용 메트로이드를 생각해 보긴 했지만 사무스가 3D로 넘어가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안 됐다고 털어놓았다. 닌텐도는 다른 스튜디오들에도 제안했지만, 처음엔 슈퍼 메트로이드와 비교당하는 부담을 지겠다는 곳이 없었다. 같은 부담감 때문에 사카모토도 2D 메트로이드 신작에서 손을 떼고 있다가, 휴대용 게임기에 기술적 도약을 가져다준 게임보이 어드밴스 시제품이 등장하고 나서야 생각이 바뀌었다.

사무스를 액션 히로인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 슈퍼 메트로이드 팀 대부분이 더는 함께하지 않는다는 제약, 그리고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로 시리즈를 처음 알게 된 새로운 유저층에서 받은 영감까지 겹치면서, 감독은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내놓았다.
비교를 피하기 위해 사카모토는 공식을 비틀기로 했다. 전투에 초점을 맞추고, 비선형 탐험은 게임의 제한된 구간으로 밀어냈으며, 텍스트 서사를 강화해 주인공의 심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앞선 세 작품에서 사무스는 빈약한 장비로 시작해 스테이지를 나아가며 하나씩 갖춰 나간다. 메트로이드 퓨전에서 현상금 사냥꾼은 가진 걸 잃고, 그녀의 전진은 주변 환경과 상관들이라는 족쇄에 묶인다.

퓨전은 2002년 11월, 프랜차이즈 최초의 3D 게임인 메트로이드 프라임과 같은 날 출시됐다. 미국의 레트로 스튜디오가 개발하고(미야모토의 감수 아래, 사카모토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이 '스핀오프'는 닌텐도 게임큐브의 간판 스타가 됐다. 오리지널 공식을 3D 환경으로 옮기고 훌륭한 1인칭 슈팅 시스템을 구축한 이 게임은 그 자체로 업계에 충격을 줬다. 그렇게 2D 게임은 새로 등장한 형제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그래도 슈퍼 메트로이드보다 10만 장을 더 팔아치웠다.
많은 팬들(그리고 훗날 메트로배니아를 만들게 될 일부 개발자들)이 메트로이드 퓨전의 시도를 외면했지만, 이 게임은 세월이 흐르며 재평가를 받았다. 하드웨어 덕분에 이 게임은 기막히게 늙지 않는다(심지어 슈퍼보다도 낫다). GBA의 가능성은 사카모토의 눈에도 들어왔고, 그는 그때까지 배운 모든 것을 쏟아부어 오리지널 메트로이드를 리메이크하기로 했다. 2004년에 나온 메트로이드 제로 미션은 리메이크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춘 게임이다. 원작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무대와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원작을 확장한다.
2004년에 나온 메트로이드 제로 미션은 리메이크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춘 게임이다. 원작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무대와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원작을 확장한다.
이것이 메트로이드의 또 한 번의 시대 마감이었다. 제로 미션 출시 이후 닌텐도는 대대적인 회사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메트로이드 프라임은 후속작을 두 편 냈지만(어느 쪽도 원작에는 못 미쳤다), 새로운 2D 게임은 무려 13년 동안 나오지 않게 된다.

2005년부터 2009년 사이 자체적으로 두 번 시도했다가 흐지부지된 뒤, 사카모토는 팀 닌자(닌자 가이덴 제작사)와 손잡고 닌텐도 Wii용으로 자신만의 3D 메트로이드를 만들기로 했다. 그의 목표는 퓨전의 서사적 개념, 특히 사무스가 가져야 한다고 그가 생각한 심리와 성격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2010년에 출시된 메트로이드 Other M은 많은 이들에게 프랜차이즈 최악의 게임으로 꼽힌다. 사무스의 묘사는 이전 작품들에서 확립된 모습과 영 딴판이고, 그마저도 길고 신파조인 컷신으로 전달된다. 게임플레이는 준수하지만 서사의 단점을 상쇄할 정도는 못 된다. 설상가상으로 Other M은 예상보다 훨씬 덜 팔렸고, 닌텐도가 실패 원인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려고 설문조사까지 돌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암흑기가 시작됐다. 이후 6년간 메트로이드 게임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메트로이드 프라임조차도). 2016년, 팬들은 차라리 아무것도 안 나오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페더레이션 포스는 닌텐도 3DS용 멀티플레이 스핀오프로, 많은 이들이 아직도 잊으려 애쓰는 작품이다. 그해의 작은 빛은 팬 게임이었다. Another Metroid 2 Remake(AM2R). 메트로이드 II: Return of Samus를 게임보이 어드밴스 게임처럼 재해석한 이 작품은 아르헨티나 출신 밀턴 과스티, 일명 DoctorM64가 개발했지만, 닌텐도는 출시 하루 만에 인터넷에서 내려버렸다. 출시일은 하필 메트로이드 30주년이었다.
메트로배니아의 시대, 그리고 왕의 귀환?
2004년부터 2017년까지 2D 메트로이드는 단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 그 10여 년 동안, 이미 GBA로 게임을 내고 있던 캐슬바니아는 닌텐도 DS로 넘어가 호평받는 작품들을 이어갔지만, 월하의 야상곡만큼의 인기나 파급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두 프랜차이즈의 존재감은 조금씩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제레미 패리시는 게임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로, 흔히 '메트로배니아'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은 이게 만델라 효과라고 지치지도 않고 반박하고 있지만(그러면서 정작 최근에 이 용어가 제목에 들어간 책을 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메트로이드 게임들은 그저 '탐색 액션'으로 분류됐는데, 이는 '탐험 기반 액션'을 뜻하는 探索型アクション(tansaku-gata akushon)에서 온 말이다. 이 장르의 다른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고유한 용어가 생겨날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무렵, 플스에서 선보인 것을 더 깊이 파고든 캐슬바니아와 이 두 프랜차이즈에서 영감을 받은 초창기 작품들, 특히 2004년의 인디 게임 동굴 이야기와 Eternal Daughter가 게이머 포럼에서 '메트로배니아'라는 말을 쓰는 대화에 불을 붙였다. 그런 포럼 중 하나를 운영하던 스콧 샤키는 훗날 1UP 사이트에서 패리시와 함께 글을 쓰게 됐고, 패리시는 이 단어를 동료에게서 가져왔다고 인정한다. 이 역사가는 2년 뒤 'Metroidvania Chronicles'라는 연재 기사를 시작했고, 거기서 이 용어에 대한 최초의 정의를 내리게 된다.
3D 게임의 득세로 메트로배니아는 이후로도 몇 년 동안 확산되지 못했다. 2000년대 말, 섀도우 컴플렉스(2009)는 제작자 스스로 메트로배니아라고 칭한 최초의 게임 중 하나였고, 이 장르를 가정용 콘솔로 되돌려놓았다. 또한 이 장르가 인디 스튜디오에 딱 맞는다는 생각을 퍼뜨렸다. 예산에 걸맞은 환경 안에서 복잡한 서사와 게임플레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14년 과카멜레, 그리고 무엇보다 2015년 오리와 눈먼 숲의 출시로 확실해졌다.
이 시기에는 메트로이드가 게임 산업에 끼친 영향 중 종종 논의에서 빠지는 또 다른 부분이 있다. 소울라이크, 즉 오늘날 게이밍에서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또 하나의 장르는 메트로배니아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비선형적이고 미로 같은 레벨 디자인 같은 구체적 요소를 넘어서까지 말이다. 데몬즈 소울과 다크 소울은 진행의 수단으로서의 난이도, 그리고 스토리텔링 방식으로서의 절제된 서사 요소라는 메트로이드의 교과서를 따른다.
소울라이크 속 메트로배니아의 이런 기원은 두 장르 간의 시너지로 이어졌다. 메트로이드 프라임의 경험 덕분에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2009)부터 컨트롤(2019)까지 다른 게임들이 이 스타일을 3D 환경에 옮기는 모험에 나설 수 있었던 반면, 스타워즈 제다이: 오더의 몰락(2019) 같은 작품들은 메트로배니아와 소울라이크를 섞는 데 도전해 훌륭한 결과를 냈다.
하지만 이런 장르 간 공생을 할로우 나이트만큼 잘 보여주는 게임은 없다. 호주의 팀 체리가 빚어낸 연금술은 업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다. 2017년에 출시된 할로우 나이트는 이런 장르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닌텐도의 새 콘솔, 닌텐도 스위치의 급증하는 인기를 제대로 활용했다. 이 게임은 메트로배니아 요소의 집대성일 뿐 아니라, 디자인의 탁월함이라는 닌텐도식 철학까지 돋보이게 한다.

할로우 나이트의 성공은 메트로배니아의 황금기를 열었다. 2018년 데드 셀, 2019년 블라스페머스와 블러드스테인드(월하의 야상곡의 정신적 후계작), 그리고 2020년 후속작 오리와 도깨비불의 의지(AM2R로 얻은 명성 덕분에 밀턴 과스티가 참여했다) 같은 게임들이 이어졌다. 장르의 탄탄한 기반 덕분에 2024년에는 1인 개발 게임 애니멀 웰부터 유비소프트의 거대한 페르시아의 왕자: 잃어버린 왕관까지, 이렇게나 다른 사례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 지도에서 메트로이드는 어디에 있을까? 왜 지금 이 흐름의 얼굴이 사무스가 아니라 할로우 나이트일까?
공교롭게도 바로 그 2017년에 메트로이드의 부활이 시작됐다. 닌텐도는 단 하루 만에 메트로이드 프라임 4가 개발 중이라는 사실(실물을 보기까지 9년이 걸린다)과, 석 달 뒤 닌텐도 3DS용 메트로이드 II: Return of Samus의 자체 리메이크인 메트로이드 사무스 리턴즈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처음으로 외부 스튜디오가 개발을 맡았다. 바로 머큐리스팀이다. 이 스페인 스튜디오가 이름을 알린 작품은 공교롭게도 캐슬바니아: 로드 오브 섀도우였다. 이보다 더 메트로배니아다운 조합이 있을까? 스튜디오는 닌텐도에 메트로이드 퓨전 리메이크를 제안했지만, 사카모토는 이 기회에 자신이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았던 작품을 업데이트하는 쪽을 택했다.
이 지도에서 메트로이드는 어디에 있을까? 왜 지금 이 흐름의 얼굴이 사무스가 아니라 할로우 나이트일까?
이 리메이크 역시 판매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3DS의 황혼기에 출시한 게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사카모토가 꿈꾸던 메트로이드 5를 개발할 수 있게 해준 발판이 됐다. 이미 제로 미션 때부터 디렉터는 사무스가 적에게서 숨고 도망쳐야 하는 상황으로 긴장감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잠입 게임을 메트로이드식으로 각색한 것이다. Other M 이전 시절, 게임보이 어드밴스용, 이후엔 닌텐도 DS용 'Metroid Dread'라는 게임에 대한 루머가 잡지와 포럼에 들불처럼 번졌다.
리메이크가 아닌 마지막 2D 메트로이드 이후 19년이 지난 2021년에야 닌텐도는 메트로이드 드레드를 공식 발표했다. 한 게임이 거의 20년이 지나서도 세상에 나올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브랜드에 대한 닌텐도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승부수는 통했다. 메트로이드는 어쩌면 시리즈 최고작이자 닌텐도 스위치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돌아왔다. 이전 작품들의 장점을 모두 담아내면서도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지금까지 모든 작품의 서사를 마무리 짓는 게임이다. 프랜차이즈 최다 판매작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존재가 알려진 지 15년 만에 발표된 메트로이드 드레드(2021)에 대한 반응.
하지만 메트로이드는 판매량으로 가치를 매길 시리즈가 아니다. 타이밍이 전부인데, 이 시리즈는 번번이 그 타이밍을 놓쳤다. 2D 게임이 저물어갈 때 최고의 2D 게임을 만들었고, 자기 프랜차이즈 게임에 가려졌고, 기술의 흐름과 엇박자를 냈고, 장르가 부흥할 때는 뒤늦게 돌아왔다. 그럼에도 매 작품이 전작보다 더 인기를 얻는다. 메트로이드는 해마다 팬을 늘려가고 있고, 닌텐도도 자사의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메트로이드는 판매량으로 가치를 매길 시리즈가 아니다. 타이밍이 전부인데, 이 시리즈는 번번이 그 타이밍을 놓쳤다.
메트로이드의 진짜 가치는 플레이어들과 미래의 개발자들에게 건네주는 것에 있다. 메트로이드는 역사적으로 디자인의 탁월함을 이끌어온 존재였다. 제작자들의 가장 정신 나간 아이디어 앞에서도, 업계에서 가장 험난한 개발 과정 속에서도 말이다. 메트로이드 퓨전의 전투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을까? 아니면 메트로이드 프라임 4의 기술적 성취에?
사무스 아란과 그 치명적인 적들의 흔적은 게임의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이 우주의 어떤 공간과 시간에서도 메트로이드 없이 게임이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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