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루한 순례 르포: 믿음, 물집, 그리고 위기
루한 순례: 60킬로미터에 걸친 육체적 고행, 그리고 희망을 찾아 나선 길.
루한 순례: 60킬로미터에 걸친 육체적 고행, 그리고 희망을 찾아 나선 길.
—일자리 있고, 돈 있는 사람이요. 그냥 평범한 사람.
젊은 여자 둘이 한 본당 무리와 함께 걸으며 성모님께 무엇을 빌고 있는지 신나게 이야기한다. 바로 남자친구다. 루한 대성당까지는 아직 몇 블록이 남았고 시각은 벌써 새벽 2시가 넘었다. 다리는 무겁고, 발 상태는 전반적으로 즐겁고 차분한 분위기와 대조를 이룬다. 밤공기는 살짝 선선하고, 이 시간쯤 되자 바람이 순례자들 옷에 묻은 빗물을 말려 놓았다. 비가 남기고 간 건 온 사방에 퍼진 덜 마른 행주 냄새뿐이다.
금발에 파란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하늘색 파이프 수레를 끌고 간다. 수레에는 투명 비닐로 감싼 성모상이 실려 있다. 그녀는 마이크를 손에 들고 노래를 부르는데, 음 하나 제대로 맞추는 게 없다. 절뚝거리는 인파 사이에서 참다 못한 웃음이 새어 나오고, 결국 그녀도 따라 웃는다. 사람들 기운 북돋우러 나왔는데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녀는 노래를 그만두고 자기 본당 사람들에게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거의 다 왔다고, 목적지가 코앞이라고 일깨운다. 대성당은 아직 빨간 불빛 두 개로만 보인다. 컴퓨터로 뽑은 표지판들이 남은 거리를 알린다. 11블록, 7블록, 5블록.

리니에르스에서 출발해 60킬로미터 가까이 걸어온 사람들이 있고, 모론이나 메를로, 혹은 루한에서 17킬로미터 떨어진 마지막 정거장 헤네랄 로드리게스에서 합류한 사람들도 있다. 로미나와 파쿤도 모자처럼 금요일 밤 로마스 데 사모라에서 출발해 70킬로미터 넘게 걸어온 이들도 있다.
일요일 새벽, 이곳은 성모님께 이것저것 빌었던 신자와 믿는 이들로 북적이는 거대한 개미굴이다. 그들이 빈 것 중에는 이 길을 끝까지 걷게 해 달라는 소원도 있었다. 아름다운 루한 대성당 앞 광장은 주저앉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바닥에는 양말이며 운동화, 배낭이 널려 있다. 묵주, 성화 카드, 팔찌, 메달, 미니어처를 파는 노점 두 곳 사이에서 한 젊은 여자가 남자 품에 안긴 채 기절한다. 곧바로 여자 둘이 다가와 그녀를 바닥에 눕히는 걸 돕는다. 바로 근처에 의료 지원팀이 있다. 그날 밤 루한 대성당에는 필요한 모든 게, 아니 그 이상이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민중 행사 중 하나에서 또 한 번 60킬로미터를 걸어냈다는 뿌듯함까지 있다.
루한 시청에 따르면 제52회 루한 청년 순례에는 약 100만 명이 도착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치안장관 하비에르 알론소는 올해 참가자가 역대 최다인 270만 명이었다고 밝혔다. 첫 번째 루한 청년 순례 역시 주최 측 예상을 깨뜨렸다. 6,000명 정도로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3만 명 가까이 모였다.
루한 시청에 따르면 제52회 루한 청년 순례에는 약 100만 명이 도착했다.
순례의 첫 회는 1975년 10월 25일, 그 시절을 얼룩지게 한 정치적·사회적 폭력과 현실을 바꿀 또 다른 길을 청년들에게 열어 주자는 취지로 열렸다. 대표적 인물 중 하나가 라파엘 텔로 신부였다. 그는 (그 전해에 암살당한) 무히카 신부의 제자이자 민중 신학의 주창자였다. 불과 몇 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몇 가지 교회 개혁을 추진해 구성원들 사이에 수평적 관계를 강화한 터였다. 해방신학, 즉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빈곤과 불의 앞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한층 밀어붙인 그 흐름의 영향을 받은 교회 일부와는 아주 매끄러운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 걷는다. 루한 청년 순례. 역사적·사목적 서술을 위한 노트』(2004)라는 책에는 한 참가자의 이런 증언이 실려 있다. “(...) 동기는 많고 제각각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함께 걷고 있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말했듯, 우리는 모두 뒤섞여 있었다. 동네 사람들, 학교 아이들, 본당 신자들,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정치 활동을 하던 사람들, 뭔 일인가 구경하러 온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이들까지. 모두가 같은 어머니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 현실은 우리 젊은이들이 걷기로,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었다.” 그 첫 회는 주최 측 내부에서조차 정치적 색채가 아주 노골적이었다. 표어마저 그 시대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청년들은 조국을 위해 루한으로 순례한다.”
2026년 올해의 표어는 “어머니, 당신의 품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형제로 알아봅니다”였지만, 이날 행렬은 말비나스 주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 2-1 경기 때 몰래 반입됐던 그 깃발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 모자. 스티커. 거리에 붙은 인쇄 포스터. 루한 성모 티셔츠와 말비나스 티셔츠를 나란히 파는 가게들. 2027년 4월 2일이 민중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보여 주는 예고편일까?
브라질 지리학자 제니 호젠달은 성지의 힘이 바깥에서 오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 힘을 장소에 투사하는 건 순례자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짜 행렬은 각자의 속에서 벌어진다. 길 위에서 성모 신심과 맥주 캔, 걸으면서 피우는 담배, 성가와 쿰비아 비예라를 번갈아 틀어 대는 본당 수레의 스피커가 아무 이음새 없이 맞물릴 때, 정통 교회의 이미지는 슬그머니 자리를 비킨다. 그리고 특별히 언급해야 할 (그리고 완전히 예상 가능한) 것은 순례 내내 흘러나온 Los Redondos의 음악이다. 신비주의와 순례라는 코드를 가톨릭교회와 공유하는 세속의 현상이니까.
구글 맵스에 따르면 리니에르스에서 루한까지는 57.4km, 걸어서 12시간 58분 거리다. 이 경로는 두 가지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는 함께 걷는 단체나 본당의 지원팀과 만나는 지점이다. 어느 정거장이냐에 따라 공식 경로(리바다비아 대로, 후안 도밍고 페론 대로, 바르톨로메 미트레 대로, 프란시스코 피오바노 대로, 인텐덴테 콜로브라로, 베르나르도 데 이리고옌 대로, 7번 국도, 산마르틴)와의 거리가 달라진다. 다른 하나는 쉬는 시간의 길이다. 도중에 멈춰서 뭘 좀 먹고, 화장실 갔다가 다시 출발하라고 권하는 지점이 네 군데 있다. 이번 세기의 모든 경험이 그렇듯, 직접 해 보기도 전부터 새로울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SNS에는 경로를 보여 주고 온갖 난관을 최대한 무난하게 넘기려면 뭘 준비해야 하는지 경고하고 조언하는 영상이 수십 개씩 올라와 있다.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60킬로미터를 걷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그리고 가장 흔히 치르는 대가가 뭔지 짐작은, 그저 짐작은 해 볼 수 있다. 우선 발 물집. 저자극 테이프로 발을 감고 바셀린을 바르고 양말을 두세 번 갈아 신으라고 한다. 근육 피로. 그러니 디클로페낙 겔이나 알약을 챙기거나 의료 부스에서 마사지를 받는 게 좋다. 운동화는 최대한 “낡고 익숙한” 것으로(새 신발 개시는 절대 금지). 쓸림을 막으려면 편하고 몸에 붙는 옷. 모자, 선글라스, 선크림. 그리고 국립기상청 덕분에 이번 행진에선 비가 확실히 온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 우비도 챙겨야 했다.
특별히 언급해야 할 것은 순례 내내 흘러나온 Los Redondos의 음악이다. 신비주의와 순례라는 코드를 가톨릭교회와 공유하는 세속의 현상이니까.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영상들은 꼭 필요한 게 아니면 길에서 다 구할 수 있다고도 알려 줬다. 실제로 길에는 필요한 건 뭐든 파는 노점상이 즐비하다. 양말 묶음 3천 페소, 물 천 페소, 이온음료 두 병에 2천 페소, 휴대폰 충전해 주는 부스 3천 페소, 성모 티셔츠 3천에서 만 페소, 가정집 화장실 천 페소, 탄산음료 2천 페소, 커피와 뜨거운 물 천 페소, 에너지바, 샌드위치, 교황 레오 14세 깃발, 메시 깃발과 인디오 깃발, 엠파나다, 반창고, 초리판, 인디오와 크리스티나가 함께 있는 깃발, 묵주, 성화 카드, 메디알루나, 프라이드치킨.
스마트워치에 따르면 리바다비아와 몬티엘 교차로(리니에르스)에서 대성당까지는 78,143걸음, 킬로미터당 평균 18분 페이스로 2,325칼로리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이들 차고 다니는 이 작은 기계는 심박수와 혈압까지 잰다. 각종 테크 기기들이 한 몸과 한 경험의 현재를 측정하고 미래를 예측하게 해 준다. 세상은 극단적으로 수치화된 곳이 됐다. 심장이 얼마나 뛰는지, 친구가 몇 킬로미터 지점에 처져 있는지, 이 속도로 몇 시간 더 걸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구체적으로 잴 수 있다. 걷는 법을(그러니까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 가장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는 영상을 한 무더기씩 소비할 수 있는 튜토리얼의 시대에, 세상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곳이 된 것만 같다.






사진: Nicolás Suárez / 421.
올해 순례가 왜 역대 최다 인파를 기록한 것처럼 보이는지는 알기 어렵고, 아마 이유가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수십 년째 해마다 걷는 사람들이 있고, 성모님께 뭔가를 약속했는데 성모님이 들어주셨기에 다시 오는 사람들이 있고, 올해만큼은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고통 속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 침체와 예산 삭감에 얻어맞은 나라에서 지금 이 시대를 강하게 각인하는 두 가지, 일자리 부족과 건강 문제가 수많은 가정을 관통하고 있고, 소원의 상당수도 그쪽을 향한다.
마시가 그런 경우다. 그는 저녁 7시에 누나와 함께 필라르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출발했다. 그의 말로는 소원이 "분명하고도 무거웠다". 일자리를 달라는 것. 1년 넘게 구직 중인데 일이 안 구해진다.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 됐다고 느꼈고 이번엔 갈 생각조차 없었지만, 뭔가가 그를 등 떠밀어 길을 나서게 했다. 몇 시간 뒤 피로가 몰려올 즈음, 두 사람은 맥주 공장 앞에서 쉬었다. 그곳 경비 초소에서 순례자들에게 뜨거운 물을 나눠 주고 있었다. 보온병에 물을 받던 마시는 종이에 적힌 이메일 주소를 보고 경비원에게 이력서 보내는 곳이냐고 물었다. 경비원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를 쳐다보며 "무장해제될 만큼" 너그럽게 말했다. "그래도 지금 보내 봐요, 내가 뽑아 줄게." 마시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보냈다.
경기 침체와 예산 삭감에 얻어맞은 나라에서 지금 이 시대를 강하게 각인하는 두 가지, 일자리 부족과 건강 문제가 수많은 가정을 관통하고 있다.
길 내내 자원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다. 올해는 약 6,000명이 물을 건네고, 발을 주물러 주고, 상처를 치료해 줬다. 물집을 몇 개나 치료했는지 모를 간호사 무리가 창문 열어 줘, 에어컨 틀어 줘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7번 국도에서는 순례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일부러 나온 한 청년이 끝에 스펀지 손이 달린 빗자루를 들고 "할 수 있다, 힘내!" 하고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청한다. 루한의 두 번째 다리를 건너는 곳에서는 시청 부스가 스피커로 Floricienta를 틀어 놓고 물컵과 응원의 말을 나눠 준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모든 브이로그와 get ready with me 영상, 유튜브 댓글, 그리고 이미 걸어 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경고한다. 헤네랄 로드리게스에서 루한까지 구간이 단연코 최악이라고. 올해는 아침 7시 반쯤 출발한 사람들 기준으로 처음 20킬로미터 동안 비가 내렸다. 하지만 2025년에는 토요일 새벽에 비가 쏟아져 7번 국도를 걷던 사람들을 물폭풍으로 두들겨 댔다. 또 하나의 중요한 조언은 쉬는 시간을 짧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몸이 식고 굳어서 다시 움직이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마지막 17킬로미터가 진짜 시험대다. 몸이 따라 준다면 도착할 수 있다… 아마 절뚝거리면서.
하지만 모두가 도착하는 건 아니다. 다이아나는 헤네랄 로드리게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내 몸의 한계를 이렇게까지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아이들을 낳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죠. 53킬로미터를 걷고 나니 무력감과 분한 마음이 밀려왔어요. 그래도 사랑하는 페르페투오 모임이 내내 저를 붙잡아줬어요... 하나하나 다 챙겨주고, 힘을 북돋아주고, 정말 중요한 건 과정이라는 걸 깨닫게 해줬죠.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이 잔뜩 남았어요. 서로 돕고, 하나 되고, 나누고, 함께하는 아르헨티나요." 다이아나는 아끼는 사람의 암을 낫게 해준 성모께 감사드리려고 걸었고, 혼자만 간직하는 소원도 하나 빌었다. "약하고 내맡긴 마음으로, 완전히 열린 채 바실리카에서 성모님을 마주하며 엄청난 평화를 느끼는 건 정말 벅찬 일이었어요... 다시없을 경험이었고, 분명히 또 할 거예요. 꼭 도착하고 싶거든요."

길은 험하다. 국도는 대로처럼 사람을 품어주지 않고, 바람은 옆에서 들이쳐 마지막 몇 킬로미터를 정말로 고통스럽게 만든다. "한계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돼요." 서른네 살에 처음으로 이 행진에 나선 플로렌시아의 말이다. 카밀라는 마지막 구간을 성모께 힘을 달라고 빌며 걸었고, 성모는 응답했다. 그녀는 끝내 도착했다. 고된 여정이 되리라는 걸 알았고, 떠나기 전엔 겁도 났다. 걷는 동안 흔들린 순간들도 있었는데, 어쩌면 그런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신앙의 실천일지 모른다. 불확실함과 확신이 번갈아 찾아와도 행동을 이어가는 것.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보여지고 전시되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건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더 깊어진 경제 위기가 거듭되어 온 우리 같은 나라에서는, 삶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 믿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희망이 뭔지 아는 사람?" 모레노 근처에서 한 여자가 확성기에 대고 외친다. 아직 길은 절반 넘게 남았고, 아까는 맑았고 그 전엔 비가 오던 하늘이 이제는 잔뜩 흐리다. 길은 고요하다. 여자가 웃으며 스스로 답한다. "마지막까지 남는 거죠. 힘내요, 힘내, 힘내, 루한까지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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