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레이놀즈와 마크 피셔: 음악으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해독하다
레이놀즈와 피셔는 어떻게 팝과 일렉트로닉, 포스트펑크에서 출발해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를 만들어냈나.
레이놀즈와 피셔는 어떻게 팝과 일렉트로닉, 포스트펑크에서 출발해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를 만들어냈나.
사이먼 레이놀즈와 마크 피셔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상가 두 사람이 되었고,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이들의 방식은 한 세대의 음악 평론가들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들의 지적 계보는 어디에 닿아 있을까? 어떤 개념을 쓰는가? 두 사람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
우선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레이놀즈와 피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상가이자 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두 사람은 대중문화와 대량문화에 관심을 기울여 온 영국의 탄탄한 전통에서 나왔다. 다소 희화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독일의 문화 분석 전통은 20세기 이후 대량문화에서 점점 커지는 위협을 보았다. 그 위협은 생산물의 획일성과 표현의 일방향성으로 드러났고(이는 주체의 획일성을 낳아, 주체들이 동일성 속에서 포맷되어 파시즘 운동에 동원되기 좋은 재료가 된다), 반면 영국인들은 전후부터 민중적 표현의 창조적 차원에 관심을 가졌고, 노동계급과 긴밀하게 얽혀 있던 민중문화를 재구성하는 일에 몰두했다.
레이놀즈와 피셔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대중문화와 대량문화에 관심을 기울여 온 영국의 탄탄한 전통에서 나왔다.
그 흐름 속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이름이 둘 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와 스튜어트 홀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로 알려진 그룹의 일원이었는데, 여기에는 에릭 홉스봄과 E.P. 톰슨 같은 거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역사가들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을 옹호했지만, 그것은 소련이 공포한 경직된 2단계 구조주의보다 더 복합적인 것이어야 했다. 이들은 영국 공산당에 몸담았지만,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 이후 대부분 당을 떠났다.
그 그룹 안에서 윌리엄스는 주로 문학에 집중했는데, 그의 대표작 『문화와 사회』는 영국 노동계급의 조건을 표현하는 프롤레타리아 전통을 찾아 영문학의 역사를 재구성한 작업이다. 이 책에서 윌리엄스는 또한 폭넓은 문화 개념을 내세웠다. '위대한 작품들'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 뿌리를 두고, 민속과 구전 전통, 노동계급의 결사 문화까지 아우르는 개념 말이다. 문화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이런 복합적 시각은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에서도 드러나는데,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핵심적인 문학 연구 이론서로, 문화 속의 지배적인 것, 잔여적인 것, 부상하는 것이라는, 오늘날 반쯤 상식이 된 개념들을 우리에게 남겼다. 윌리엄스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텔레비전을 진지하게 다룬 최초의 이론가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관한 그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흐름'이다. 텔레비전이란 다양한 콘텐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물이며, 시청자와 텔레비전의 관계는 이 공급과 다양성, 그리고 무한해질 수 있는 잠재성에 의해 규정된다는 생각이다. 보다시피 알고리즘과 기술관료 과두제가 밀어붙이는 끝없는 스크롤과 아주 비슷하다.

한편 스튜어트 홀은 버밍엄 문화연구 학파의 창시자였다.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이었던 홀은 문화와 정체성 해석에서 유연성을 옹호했다. 그에게 우리 모두는 문화의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며, 문화의 확산, 특히 문화적 의미의 확산에 '위에서 아래로'의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부호화와 해독' 모델을 발전시켰다. 이 모델에서 문화적 메시지의 모든 부호화는 세 가지 위치에서 해석될 수 있다. 메시지가 부호화된 그대로 그 틀을 받아들이는 헤게모니적/지배적 위치, 일부 요소는 받아들이고 다른 요소는 거부하는 협상적 위치, 그리고 메시지를 정반대로 해독할 수 있는 대항적 위치다. 이 마지막 위치는 대중문화에 대한 LGBTQ+ 독해에서 흔한 '비틀어 읽기'의 실천을 키워왔다.
홀은 그람시의 추종자였고 헤게모니의 구성과 의미에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그람시와 마찬가지로 헤게모니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문화적인 것이 뒤섞이는 '국면'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는 국면을 우발적인 '투쟁의 공간'으로 이해했는데, 그곳에서는 적절한 조합만 갖춰지면 현상 유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온갖 힘의 소용돌이에 맞서 현상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마지막으로 홀의 작업 상당 부분은 정체성, 특히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유럽이 동시에 존재하는 카리브해의 인종적·디아스포라적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 글들에서 그는 종종 자기민족지와 자기이론화를 시도했고, 이는 이중적 정체성 개념으로 이어졌다. '진짜 나'로 여겨지는 집단적 정체성의 핵과 동일시되는 영속적인 정체성인 동시에, 역사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바뀌는 가변적인 정체성이다. 그의 정체성 개념은 본질주의적 관념에서 국면에 따라 규정되는 위치 설정의 관념으로 진화해 갔다.
분석과 정치적 실천을 뒤섞고, 문화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경제적인 것과 동등한 위치에 놓은 이 두 이론가는 레이놀즈와 피셔 모두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레이놀즈와 피셔는 각각 1963년과 1968년에 태어나, 윌리엄스와 홀(1921년, 1932년생)이 이론 작업을 펼치던 시기에 자랐다.

레이놀즈부터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그가 먼저 공적 무대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때 영국에서 핵심적이었지만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한 직업, 바로 음악 평론가를 통해서였다. 레이놀즈는 운 좋게도 70년대 말 펑크에 푹 빠지기 딱 좋은 나이였고, 이 결정적 순간으로 그는 훗날 글에서 계속 되돌아가게 된다. 80년대에는 Melody Maker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New Musical Express의 경쟁지이자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잡지 중 하나였다. 초기 칼럼에서 그는 힙합을 옹호했고, 대중문화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대체로 전위적인 관념을 내세웠다. 이 관념은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뼈대가 된다.
90년대에는 레이브 문화와 새로운 일렉트로닉 신에 꽂혀, 훗날 그의 첫 역사서이자 백과사전 같은 책이 될 칼럼들을 쓰기 시작했다. Energy Flash: A Journey Through Rave Music and Dance Culture다. 여기서 그는 초기 개념 중 하나인 '하드코어 연속체'를 전개한다. 영국과 미국의 다양한 댄스 음악 신 사이의 연속성으로, 새로운 사운드가 등장할 때마다 춤출 수 있는 것의 경계를 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곳으로 밀어붙였다는 개념이다.[1] 이 책은 또한 그의 장편 작업 스타일을 확립했다. 레이놀즈는 한 신에 잡식성으로 뛰어들어 가능한 한 많은 사운드와 데이터를 소비한 다음, 그것을 시대별 혹은 지역 신별로 구획하는 연구자다. 그래서 그의 책들은 역사서이면서 동시에 매뉴얼이다.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아티스트를 더 넓은 맥락에 배치하는 깊은 능력과 함께, 놀라울 정도의 네임드로핑 경향이 결합되어 있어서, 다 읽고 나면 들어본 적도 없는데 어느새 영업당한 아티스트들의 거대한 목록을 손에 쥐게 된다.
레이놀즈는 한 신에 잡식성으로 뛰어들어 가능한 한 많은 사운드와 데이터를 소비하는 연구자다.
그의 커리어에서 다음 이정표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그를 읽기 시작한 계기가 된 책, Rip It Up And Start Again: Postpunk 1978-1984다. 2005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영국과 미국의 포스트펑크 시대를 파노라마처럼 훑으며 뒤집어보지 않은 돌도, 둘러보지 않은 신도 남기지 않는다. 레이놀즈의 핵심 테제는 단순하다. 새로운 세계, 음악 창작의 원년이 되겠다는 약속, 과거를 쓸어버리고 더 다양하고 실험적인 새 창조성의 문을 열겠다는 펑크의 약속은 그 짧은 분노의 몇 년 동안이 아니라, 바로 그 직후에 온 것들을 통해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이자 모범 사례는 PIL(Public Image Ltd.)이다. 존 라이든이 자 워블, 키스 레빈과 함께 결성한 밴드로, 라이든이 섹스 피스톨즈에서 터뜨렸던 냉소적인 분노에 유령 같은 덥, 거친 노이즈, 부족적인 타악기를 더했다.

그리고 바로 여기가 피셔를 소개하기 좋은 타이밍인 것 같다. 피셔는 2003년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블로그 k-punk를 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가 초짜였다는 뜻은 아니다. 90년대에 그는 박사 논문을 썼고, Cybernetic Culture Research Unit의 창립 멤버였다. 오늘날 흔히 통용되는 가속주의, 암흑 계몽, 자본주의 속 누멘적인 것에 관한 아이디어 상당수가 바로 이곳에서 나왔는데, 특히 신우파의 새로운 암흑의 별 닉 랜드가 이를 표현했다. 이 시기에 그는 덥스텝의 선구자 중 한 명인 Kode9과도 친구가 되었는데, 덥스텝은 그에게 각별한 무게와 애정을 지닌 신이 된다.
지금 피셔를 소개하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레이놀즈가 음악에 관한 책들에서 표현하는 많은 생각들, 즉 언제나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망, 미래에 대한 애착, 고급과 저급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엘리트 문화만큼 세련된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이 피셔의 핵심 개념 하나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바로 '대중 모더니즘'이다. 피셔에 따르면 전후 영국의 정치경제적 조건과 복지국가의 승리 덕분에, 노동계급은 민중적 뿌리와 모더니즘, 즉 영화·연극·문학·현대음악의 전위적 흐름에 대한 노출을 동시에 결합한 위치에서 문화 창작에 뛰어들 수 있었다.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문화 진흥의 중심 역할은 전후에 맡게 된 영국의 분산된 예술학교 네트워크, 그리고 무상 대학 교육 덕분에,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화 말고는 선택지가 없던 폭넓은 인구층이 전위 문화와 접촉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의 경험과 뒤섞을 수 있었다. 여기서 노동계급 출신 소설가와 극작가 그룹인 앵그리 영 맨, 무한히 변주된 온갖 영국식 로큰롤, 그리고 영국 만화 작가들의 브리티시 인베이전 같은 흐름이 나왔다. 형식적 유희에 대한 취향과 프롤레타리아적 날을 겸비한 이 아티스트들이 영국 문화의 정수 상당 부분을 낳았다. 동시에 이 대중 모더니즘은 예컨대 「닥터 후」 같은 BBC의 시청각적·음향적 실험에서도 드러났다.

피셔는 레이놀즈와 동시대인이지만, 공적 무대에 나선 것이 더 늦었기에 두 번째 시기로 읽을 수 있다. 이는 그의 삶을 따라다닌 거대한 유령과도 연결되어 있다. 바로 우울증인데, 그가 『내 삶의 유령들』에 직접 썼듯 이 우울증 때문에 그는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꼈다. 그러니 레이놀즈는 영국에서 취향을 형성할 수 있는 제도로서의 음악·문화 저널리즘이 내쉰 마지막 숨결의 대표자로 남고, 피셔는 블로그 시대의 아바타로 등장한다. 어떤 모노컬처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취향의 파편화의 시대이지만, 동시에 주변부를 파고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우상파괴적인 목소리들이 등장할 수 있게 한 시대이기도 하다. 일찍이 k-punk를 읽으며 피셔를 알게 된 우리는 The Fall에 대한 그의 펄프-모더니즘적 해석이나, 마르크스주의와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원초적 본능」 독해에 깜짝 놀랐다.
이때부터 레이놀즈와 피셔의 대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2011년 레이놀즈는 그의 책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면서 이론적 무게가 가장 묵직하고, 어쩌면 가장 논쟁적이기도 한 책을 펴냈다. 바로 『레트로마니아』다. 책의 진단은 간단하다. 팝 문화는 자기 자신의 과거에 중독되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를 멈춘 채 자기 과거의 반복, 리믹스, 리바이벌만 찍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너무나 익숙하고 어디에나 있는 현상의 맥을 정확히 짚어냈고, 그 덕에 책의 많은 아이디어가 상식이 되었다. 20년 주기설(모든 문화와 스타일은 등장한 지 20년 뒤에 다시 유행한다) 같은 개념을 대중화한 것도 이 책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 진단에는 씁쓸함과 향수가 배어 있어서, 읽고 나면 우울하고 맥이 빠지며, 어떻게든 반박하고 싶어진다.
피셔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진단에 도달했다. 「팝은 산 채로 죽었나?」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2]에서 그는 문화에서는 그 무엇도 완전히 죽지 않는다고 옳게 지적했다. 모든 문화 신, 살아 있고 비옥했던 모든 표현은 언젠가 "막다른 곳에 이르러 더는 스스로를 갱신하지 못하고, 굳어져 전통이 된다. 사라지지 않고, 산 채로 죽은 상태로 남는다".[3] 그가 보기에 2000년대 팝 문화는 "무화(無化)의 능력, 즉 이미 존재하는 것을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잠재성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잃어버렸다.[4] 여기서 피셔는 아도르노주의자처럼 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정 변증법, 곧 보편과 특수 사이의 해소될 수 없는 갈등의 순간이며, 예술 작품은 그것을 위한 더없이 비옥한 토양이라는 것이다. 피셔는 팝티미즘 속에 숨어 있는 순수한 쾌락주의로의 초대를 혐오했고, 거기서 문화적 신자유주의의 트로이 목마를 보았다. 그에게 원한과 부정성은 문화 발전의 핵심 감정이었다.
피셔는 팝티미즘 속에 숨어 있는 순수한 쾌락주의로의 초대를 혐오했고, 거기서 문화적 신자유주의의 트로이 목마를 보았다.
사실 여기에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핵심 지점이 하나 더 있다. 온전히 소화되지도, 인정되지도 않은 묘한 향수다. 두 사람 모두에게 문화의 결정적 순간, 즉 미래로서의 문화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펼쳐지며, 특정한 신과 표현에 결부되어 있다. 레이놀즈에게는 포스트펑크와 전자음악, 피셔에게는 70년대 저항 문화와 대중적 모더니즘, 그리고 역시 포스트펑크다. 정치와 경제와 팝 문화가 딱 맞물리면서 새로운 가능 세계로 향하는 문이 살짝 열렸던 국면이었다.

게다가 피셔가 보기에 좀비 상태인 것은 팝 문화만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대처 이후, 아르헨티나에서는 민군 독재 이후,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소련 블록 붕괴 이후 압도적 승리를 거둔 신자유주의 자체가 좀비 상태다. 이 진단과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피셔는 그의 대표작이자 동시대를 진단한 책,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써서 2009년에 펴낸다. 이 책은 자본주의가 자기 바깥은 없다는 감각, 대안은 없다는 감각을 심어놓았으며, 체제에 맞서는 어떤 투쟁도 금세 체제에 흡수되어버린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책의 진단은 정확하고 여러 층위로 나뉜다. 미래와 유토피아가 취소되었다는 감각, 저항 운동의 해체, 정신 건강의 위기, 노동이 끝없는 관료적 절차로 대체되는 현상, 분노를 겨눌 자본주의의 지휘 본부가 부재한다는 사실. 프레드릭 제임슨이나 뤽 볼탕스키 같은 저자들처럼 피셔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위대한 속임수가 68세대가 숨 막힌다고 여겼던 전후의 고용 안정을, 갈수록 초라해지는 자유의 약속과 맞바꾼 데 있다고 본다. 이론상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지만, 실제로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고 진보하는 것은 불안정화뿐이라는 것이다.[5]
동시에 피셔와 레이놀즈는 후기구조주의 사상가 자크 데리다에게서 빌려온 개념, 곧 유령론(hauntology)을 함께 쓴다는 점에서도 만난다. 'haunt'(출몰하다, 들러붙어 괴롭히다)와 존재론(ontology, 존재와 실재의 본성을 연구하는 철학 분과)을 합친 이 개념은 데리다의 1993년 책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처음 등장한다. 여기서 데리다는 마르크스주의가 언제나 근대가 부정한 거대한 타자로 나타나는 방식을 개념화하기 위해, 그리고 실존 사회주의가 영영 무너진 뒤에도, 죽음 너머에서까지 마르크스주의가 결코 실현되지 않은 약속과 잠재성으로 서구 문명에 어떻게 출몰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한다.

재현 불가능한 것을 무대에 올리는 환상 문학과 공포 문학에 깊이 매료되어 있던 피셔는 이 개념을 가져와,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승리가 어떻게 미래의 취소를 수반하는지, 그리고 20세기 아방가르드와 반문화가 약속했던 "취소된 미래들"이 어떻게 유령처럼 출몰하는지를 설명한다. 자연으로의 회귀, 공동체주의, 대중적 모더니즘, 자유, 평등, 박애. 그의 말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일련의 부재를 바탕으로 해서만 가능하다. 그 부재들이 존재하는 것에 앞서고, 그것을 둘러싸고, 그것이 이해 가능해지도록 해준다".[6]
한편 음악의 질감에 특히 관심이 많은 레이놀즈는 이 개념을 녹음과 결부된 일종의 물질성과 연결해 사용한다. 과거의 음악이 현재의 음악에 남기는 흔적 말이다. 그의 유령은 바이닐 위를 긁는 바늘의 음색, 동시대 곡에 등장하는 필드 레코딩이나 라이브러리 뮤직, 샘플링, 겹쳐 인화된 소리의 유령과 더 관련이 있다. 그는 『레트로마니아』에서 이렇게 쓴다. "녹음에는 처음부터 유령적인 저류가 흐르고 있었다. 오디오 기술 연구자 조너선 스턴이 지적하듯, 녹음은 처음으로 인간의 목소리를 살아 있는 몸에서 분리했다 (…) 축음기는 일종의 불멸에 대한 전망을 품고 있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언젠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에게 들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7] 그런데 동시에 레이놀즈는 언뜻 보기에 음악에서 가장 현대적인 작업 중 하나인 샘플링에서도 유령론을 발견한다. 다시 『레트로마니아』에서. "그 자체로 먼 시간으로 통하는 포털인 루프된 순간들로 이루어진 샘플 콜라주는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음악적 사건을 만들어낸다. 시간 여행과 강령회가 기묘하게 뒤섞인 것이다."[8]
흥미로운 점은, 레이놀즈가 매시업과 무분별한 샘플링을 뻔한 것들을 영양가 없이 재조합하는 짓이라며 거부하면서도, The KLF 같은 지적인 장난꾼들이나 Ghost Box 레이블 뮤지션들 같은 유령적 크레이트 디거들의 작업에 다른 음악의 흔적이 나타나는 데서는 음악 문화 속 동어반복을 벗어날 길을 찾는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과거의 파편을 쓰더라도 말이다. 피셔와 달리, 음악적 유령론을 다룬 장들은 『레트로마니아』에서 가장 낙관적인 부분에 속한다.
자, 다시 피셔로 돌아가자. 그가 생전에 낸 마지막 책은 『내 삶의 유령들』로, 여기서 그는 유령론에 대한 사유를 길게 펼쳤다. 하지만 그 책에서 그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내린 진단의 뒷면에 해당하는 질문들도 던지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가 우리를 몰아넣은 수렁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 어떻게 우리의 삶과 시간을 되찾을 것인가? 『내 삶의 유령들』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적 정동으로서의 원한을 옹호한다. 피셔의 입장은 이렇다. 현대 사회의 무쾌감증과 우울은 해방을 향한 어떤 몸짓도 애초에 가로막도록 정교하게 제조된 정동이다. 그러나 "지배 계급을 원망하는 것과 시기하는 것의 차이는, 질투가 지배 계급이 되고 싶은 욕망을 함축하는 반면 원한은 그들이 자원과 특권을 소유한 데 대한 분노를 시사한다는 점이다. (…) 특권과 불의에 대한 원한은 많은 경우 내면화되어 당연시된 열등감과 맞서는 첫걸음이다".[9]
또한 그는 2013년에 가장 많이 인용되고 가장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글 중 하나인 「Exiting The Vampire’s Castle」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이미 좌파의 "캔슬 컬처"를 물고 늘어지며,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파문하고 단죄하려는 사제의 욕망, 오류를 가장 먼저 지적하려는 현학적인 학자의 욕망, 잘나가는 무리에 끼고 싶은 힙스터의 욕망"이라고 썼다.[10] 그의 요청은 정체성의 차이보다 계급적 연대를 먼저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은 이 글은 일부 좌파의 분열과 배제의 역학이 지닌 문제를 짚은 진단으로서 지금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2017년 1월, 피셔는 우울증에 짓눌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미래를 되찾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시할 책이자 선언문인 『Acid Communism』을 작업하고 있었다. 그 프로젝트에서 남은 것은 긴 서문뿐인데, 여기서 피셔는 1960년대와 반문화로 돌아가 사이키델리아의 전복적 잠재력을, LSD와 초월적 여행이 제안하는 선형적 시간의 소거를 되살리려 한다. 신자유주의의 속으로는-죽어가면서-생산적인-척하기로부터 우리를 빼내줄 무언가로서 말이다. 세상이 가능성으로 가득 차 보였던 전환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초안에 불과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아이디어 중 하나는 자본주의가 풍요를 생산하는 체제이기는커녕 오히려 풍요를 가로막도록, 나눔과 공동체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인위적 결핍 상태 속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피셔가 바로 미래를 재건하려던 순간에 무대에서 퇴장했다는 것은 씁쓸한 아이러니다.
자본주의는 풍요를 생산하는 체제이기는커녕 오히려 풍요를 가로막도록, 우리가 끊임없이 인위적 결핍 상태 속에서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편 레이놀즈의 최근 작업들은 전자음악과 포스트펑크 시절을 넘어 자기 자서전의 문화적 빈칸을 메우는 데 몰두하는 듯하다. 마치 음악 비평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글램 신을 해부한 『Shock and Awe』는 그가 사춘기 이전의 형성기로 돌아가는 책처럼 읽힌다. 그 시절은 또한 영국이 스팽글과 화장으로 꿈꾸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섬의 비 내리는 잿빛에서 벗어나 판타지를 자극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은 20세기 영국 최고의 아티스트이자 언제나 달라질 수 있는 팝 음악의 능력을 가장 잘 체현한 보위를 떠나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분석적이기보다는 전기적인 문체를 택한 이 책은 이론적 공상보다 저널리즘을 더 높이 치는 독자를 겨냥한 듯하다. 때때로 글램의 정의를 너무 늘려서 결국 펑크 이전 70년대 록 전체를 끌어안게 되기도 하지만, 레이놀즈의 긴 작업 전체에서 보면 퍼즐을 완성하는 책이다. 이어서 나온 것이 『퓨처로마니아』로, 스스로와 논쟁하며 『레트로마니아』의 우울과 좌절에 대한 해독제를 내놓으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이 책이 대부분 이미 발표된 글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 또한 씁쓸한 아이러니다.
올해 출간된 그의 최신작의 제목은 Still In A Dream: Shoegaze, Slackers and the Reinvention of Rock (1984-1994)다. 과거의 자신과, 그리고 현재의 요구와 동시에 셈을 치르는 책처럼 보인다. 한편으로는 Rip It Up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통을 이어받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80년대의 레이놀즈가 인디의 보수성이라고 여긴 것에 꽤나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원숙한 작가가 젊은 시절의 편견으로 되돌아가, 예전에는 퇴행적이라고 여겼던 것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은 최근 젊은 세대가 슈게이즈에, 마취 같은 사운드의 겹 아래로 가라앉고 싶다는 욕망에 집착하는 현상에서 비롯된 책이기도 하다. 이는 레이놀즈의 첫 책 제목이 가리키는 감각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Blissed Out, 대략 '완전한 황홀경에 빠진 상태'라는 뜻으로, 앰비언스 가득한 음악에 오래도록 잠겨 있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상태다.

이 두 이론가이자 비평가가 내놓은 진단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열려 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대안은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팝 문화에서 같은 것의 영원한 반복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어떤 구체적인 조직 형태가 우리에게 다시 정치적 실효성을 되찾아 줄까? 정치와 문화가 손잡고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키는 국면을 어떻게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절박한 질문들이지만, 좌파가 어느 정도라도 합의한 구체적인 행동 강령은 아직 없다. 우리는 유령들과 공존하고, 어둠 속에서 손짓하며, 사라진 이들의 발자취를 좇는다. 정치적·문화적 해방과 각성을 찾아서. 그리고 피셔와 레이놀즈의 말에 귀 기울인다면, 그 둘은 결국 하나이자 같은 것이다.
[1] 또한 이 시기에 레이놀즈는 Slint, Tortoise, Stereolab, Gastr del Sol처럼 록 악기를 재즈의 즉흥연주에 더 가까운 목적으로 사용하며 텍스처와 분위기를 강조하는 일련의 밴드들을 묘사하기 위해 '포스트록'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2] K-Punk Volumen 2. Escritos reunidos inéditos (Música y política)(Caja Negra, 2022)에 수록.
[3] 피셔, K-Punk Volumen 2, 108쪽.
[4] 피셔, K-Punk Volumen 2, 111쪽.
[5] 오늘날에는 심지어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프레카리아트'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창작 직종이나 사회과학·인문학 관련 직종에서 그렇다.
[6] 피셔, 『내 삶의 유령들』, 43-44쪽.
[7] 레이놀즈, 『레트로 마니아』, 332쪽.
[8] 레이놀즈, 『레트로 마니아』, 333쪽.
[9] 『내 삶의 유령들』, 274쪽.
[10] 피셔, Exiting The Vampire’s Castle, https://web.archive.org/web/20131129003704/https://thenorthstar.info/?p=11299.
Y a cada colaborador se le paga por su trabajo. Las dos cosas dependen de los suscriptores.